북미와 남미를 가르는 유일한 단절 구간 다리엔 갭은 왜 21세기에도 길이 나지 않았을까. 지형과 기후, 국제정치, 이주와 생태 문제를 아우르는 지리 전문가 시점에서 다리엔 갭의 실체와 의미를 정리한다.
세계 지도에서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차량이나 도로로 이동하려 하면, 그 연결은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끊어집니다. 알래스카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이어지는 팬아메리칸 하이웨이의 유일한 공백, 바로 다리엔 갭입니다. 기술과 자본, 토목 공학이 극도로 발전한 오늘날에도 이곳은 여전히 미개통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다리엔 갭은 단순히 도로가 없는 지역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개발과 보존, 이동과 경계라는 복합적인 문제를 한 몸에 품은 공간입니다. 이 글에서는 다리엔 갭이 왜 지금까지 남아 있는지, 그리고 이곳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지리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다리엔 갭은 어떤 곳인가 – 북미와 남미를 가르는 마지막 단절
다리엔 갭은 파나마 동부와 콜롬비아 북서부 국경 사이에 위치한 약 160km 길이의 열대우림 지대입니다. 거리만 놓고 보면 결코 긴 구간이 아니지만, 지리적 난이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됩니다. 이 지역은 단순한 숲이 아니라, 늪지와 급류, 울창한 밀림, 갑작스럽게 솟은 산악 지형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 지형입니다.
팬아메리칸 하이웨이는 북미와 남미를 잇는 상징적인 도로망이지만, 다리엔 갭에서 완전히 끊깁니다. 이는 기술이 부족해서라기보다, 해당 지역이 가진 특수성 때문입니다. 다리엔 갭은 지리적으로 두 대륙을 연결하는 지점이면서도, 동시에 두 대륙을 구분하는 경계로 기능해 왔습니다. 지도 위에서는 선 하나로 이어질 수 있어 보이지만, 실제 지형은 인간의 이동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구조입니다. 이 단절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된 자연 조건과 인간의 선택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왜 길이 나지 않았는가 – 자연환경과 정치적 판단
다리엔 갭에 도로가 건설되지 않은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극단적인 자연환경입니다. 이 지역은 연중 고온다습한 기후가 지속되며, 우기에는 강이 범람하고 숲 전체가 늪으로 변합니다. 건기에도 토양이 매우 연약해 도로 기반을 만들기 어렵고, 중장비가 투입되더라도 지반이 쉽게 무너지는 문제가 반복됩니다.
여기에 말라리아, 뎅기열, 황열 등 열대성 질병이 상존하는 환경 역시 대규모 공사를 어렵게 만들어 왔습니다. 단기간 탐사나 소규모 이동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수년간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도로 건설은 현실적으로 위험 부담이 큰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리엔 갭의 단절은 자연환경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국제 정치와 안보 논리 속에서 ‘연결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북미 국가들은 다리엔 갭이 육로로 연결될 경우 남미 지역의 가축 질병 북상, 마약 밀매 루트의 육상 확대, 대규모 불법 이주 증가 등을 우려해 왔습니다. 그 결과 다리엔 갭은 자연이 만든 장벽이자, 인간이 유지해 온 완충지대로 기능해 왔습니다. 길을 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진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3. 다리엔 갭의 현재 – 이주, 생태, 그리고 경계의 의미
최근 다리엔 갭은 또 다른 이유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중남미 출신 이주민들이 북미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곳을 통과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베네수엘라, 아이티, 에콰도르 등지에서 출발한 이주민들은 육로 이동을 위해 다리엔 갭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리엔 갭 횡단은 극도로 위험합니다. 급류에 휩쓸리거나 정글에서 길을 잃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으며, 무장 범죄 조직에 의한 강도와 폭력 피해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망자와 실종자 역시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리엔 갭은 더 이상 탐험의 대상이 아니라, 생존을 건 이동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한편, 인간의 접근이 제한된 덕분에 다리엔 갭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북미와 남미 생태계가 만나는 지점으로서, 수천 종의 식물과 수백 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아직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종도 상당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이 지역에는 엠베라족과 쿠나족 등 원주민 공동체가 오랜 세월 살아왔으며,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다리엔 갭은 오늘날 개발과 보존, 이동과 경계가 동시에 충돌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다리엔 갭은 단순히 길이 없는 곳이 아닙니다. 이곳은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며,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장소입니다. 모든 길이 연결되는 것이 반드시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리엔 갭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공간입니다. 이 경계의 땅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할 것인지는, 결국 우리가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