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인류의 제국을 세웠지만, 왜 얼룩말은 기병대가 되지 못했을까요?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제시한 가축화의 6가지 조건과 얼룩말의 진화적 공격성, 역사적 실패 사례를 통해 가축화의 진실을 심층 분석합니다.
인류의 역사는 말의 등 위에서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은 말의 기동력을 빌려 제국을 건설했고, 광활한 대륙을 연결하며 문명을 전파했습니다. 말은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핵심 병기이자 농경 사회의 든든한 일꾼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기묘한 의문을 품게 됩니다. 말과 외형적으로 매우 흡사하며, 아프리카 전역에 수백만 마리가 서식하던 '얼룩말'은 왜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기병대로 활용되지 않았을까요? 화려한 줄무늬를 가진 얼룩말 군단이 사바나를 가르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경이롭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인류의 기술이 부족했거나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얼룩말을 길들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진실은 훨씬 더 과학적이고 충격적입니다. 단순히 '사나워서'라는 말로는 부족한, 얼룩말의 진화론적 생존 전략과 가축화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장벽에 대해 깊이 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가축화의 본질: 단순한 사육을 넘어선 유전적 재창조
우리가 흔히 혼동하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사육'과 '가축화'의 차이입니다. 야생동물을 잡아다 우리에 가두고 먹이를 주며 인간의 통제하에 두는 것은 단순한 사육(Taming)에 불과합니다. 반면 가축화(Domestication)는 훨씬 더 거대하고 정교한 인류학적 프로젝트입니다. 가축화란 특정 동물의 집단 내에서 인간에게 유익한 형질, 예를 들어 온순한 성격, 빠른 성장 속도, 높은 번식력 등을 가진 개체만을 선별하여 수백 세대에 걸쳐 인위적으로 번식시키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과정이 수백 년, 수천 년 반복되면 동물은 유전적으로 변형되어 야생의 조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가축화된 동물은 인간 없이는 생존하기 어렵거나, 인간의 명령을 본능적으로 따르는 특성을 갖게 됩니다. 인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 균, 쇠》에서 대형 포유류 중 가축화에 성공한 종은 전 세계를 통틀어 단 14종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문명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주요 5종'(소, 말, 돼지, 양, 염소)은 인류에게 식량과 노동력, 그리고 이동 수단을 제공했습니다. 얼룩말이 이 영광스러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유는 가축화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성격'과 '번식 습성'이라는 장벽을 끝내 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바나의 생존 본능: 얼룩말이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얼룩말이 기병대로 쓰이지 못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들의 '공격성'에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말과 비슷해 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상 얼룩말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까다로운 초식동물 중 하나입니다. 인간이 다가가면 겁을 먹고 달아나는 말과 달리, 얼룩말은 위협을 느끼는 순간 즉각적으로 공격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이러한 공격성은 얼룩말이 진화해온 '아프리카 사바나'라는 극한의 환경 때문입니다. 사바나는 사자, 표범, 치타, 하이에나, 아프리카 들개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포악한 포식자들이 밀집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수만 년 동안 살아남기 위해 얼룩말은 극도의 경계심과 치명적인 공격성을 진화시켜야만 했습니다. 얼룩말은 포식자가 접근하면 뒷발로 차서 사자의 턱뼈를 가루로 만들거나, 한 번 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절대 놓지 않는 지독한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동물원 통계에 따르면, 사육사들이 사자나 호랑이보다 더 두려워하고 부상을 많이 당하는 동물이 바로 얼룩말입니다. 말은 서열 구조가 뚜렷하여 인간을 우두머리로 인식시키면 순종하지만, 얼룩말은 인간을 파트너가 아닌 '잠재적 포식자'로 인식하며 끝까지 저항합니다. 밧줄을 걸거나 안장을 얹으려는 시도 자체를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대규모 군대를 조직하기 위한 '기병대'로서의 훈련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역사적 실패의 기록과 현대 과학이 내린 결론
역사적으로 얼룩말을 길들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세기 말,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려던 유럽인들은 현지의 치명적인 질병인 '수면병(체체파리 매개)'에 주목했습니다. 유럽에서 가져온 말들은 체체파리에 물리면 속절없이 죽어 나갔지만, 현지 생태계에서 진화한 얼룩말은 이 질병에 완벽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독일 식민 정부와 영국인들은 얼룩말을 기병용이나 운송용으로 쓰기 위해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수천 마리의 얼룩말을 포획해 훈련시키려 했으나, 그들은 채찍과 먹이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훈련 과정에서 조련사들은 물리고 걷어차여 중상을 입기 일쑤였고, 간신히 길들인 소수의 개체조차 실전에서는 포식자의 냄새만 맡아도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영국의 로스차일드 남작이 런던에서 얼룩말 네 마리가 끄는 마차를 탄 사례가 유명하지만, 이는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아주 드문 '온순한 개체'만을 골라 수년간 개인적으로 훈련시킨 특수한 경우일 뿐, 보편적인 가축화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현대 과학 기술은 유전자 편집을 통해 얼룩말을 길들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이미 완벽하게 가축화된 '말'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굳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얼룩말을 길들일 실용적인 이유는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얼룩말이 기병대가 되지 못한 것은 인간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얼룩말의 치열한 생존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가축화란 결국 동물의 야생성을 거세하고 인간의 필요에 맞추는 과정인데, 얼룩말은 그 야생성이야말로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유일한 무기였기에 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얼룩말은 여전히 사바나에서 사자와 하이에나를 피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비록 인간의 안장을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자연 그대로의 경이로운 줄무늬 군단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얼룩말의 이야기는 인간이 자연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겸손한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줍니다. 얼룩말은 가축이 되는 대신, 여전히 아프리카의 진정한 주인으로 남아 자유를 만끽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