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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의 뒤안길

지귀연 판사가 언급한 영국 찰스1세 반역죄 사건에 대한 비판

by Equinoxe 2026.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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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연 부장판사가 윤석열 내란죄 선고 과정에서 언급한 영국 찰스 1세 반역죄 사형 사례의 법리적 의미를 살펴보고, 17세기 왕정 역사를 21세기 현대 한국 정치 현실에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학계와 정치권의 비판을 살펴 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하여 전직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법리적 성립 배경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독 대중과 언론은 물론 법조계 내부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목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1649년 영국 국왕 찰스 1세가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단두대에서 처형된 377년 전의 역사적 사건을 재판부가 판결문 낭독 과정에서 직접 소환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이 역사적 판결을 근거로 삼아, 국가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국민이 위임한 주권의 대의 기관인 의회를 무력으로 공격한다면 내란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재판부의 강렬한 역사적 비유를 두고 법조계 안팎과 정치권에서는 적지 않은 논쟁과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역사적 상징성을 통해 범죄의 중대성을 강조하려는 사법부의 의도는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으나, 17세기 영국의 절대왕정 시대와 21세기 대한민국의 고도화된 민주공화국 체제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현대 정치 현실과 헌법 정신에 온전히 부합하지 않는다는 날선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사안을 지켜보며 사법부의 판결문에 등장한 역사적 수사가 가진 법리적 한계와 그것이 현재 우리 정치 지형에 던지는 파장을 깊이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찰스 1세 사례 인용의 정확한 법적 배경을 짚어보고, 이것이 왜 한국 정치 현실과 맞지 않는 무리하고 과잉된 비유로 비판받고 있는지 정치적, 사법적 관점에서 상세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지귀연 판사가 언급한 영국 찰스1세 반역죄 사건

지귀연 재판부의 영국 찰스 1세 사형 사례 인용 배경

지귀연 부장판사가 찰스 1세를 판결문에 명시적으로 등장시킨 핵심적인 이유는 군주나 대통령과 같은 최고 통치권자도 국가에 대한 반역, 즉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죄를 스스로 저지를 수 있다는 법적 명분과 연원을 역사적 선례에서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로마 시대나 중세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통치자는 곧 국가 그 자체이며 통치자는 실정법 위에 존재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최고 권력자가 국가를 상대로 내란을 일으킨다는 개념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며 의회와 극심한 정치적, 조세적 갈등을 빚었고, 급기야 군대를 이끌고 의사당에 난입하여 무력으로 의회를 강제 해산시키는 초유의 사태를 벌였습니다. 이후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영국 내전에서 패배한 찰스 1세는 결국 올리버 크롬웰을 비롯한 의회파에 의해 재판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국왕의 권위가 아닌 국민의 이름으로 왕을 재판한다고 선언하며, 주권 침해를 이유로 군주에게 반역죄를 적용해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재판부는 바로 이 대목에 집중했습니다.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이 군대와 경찰 등의 막강한 물리력을 동원하여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막아 입법부의 고유 기능을 마비시킨 행위는 곧 헌법 기관을 파괴하는 헌정 질서 유린이라는 것입니다.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의회에 대한 물리적 공격은 통치권자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국민 주권 자체를 침해하는 반역 행위가 된다는 법리를 강화하기 위해 찰스 1세의 몰락이라는 극적인 세계사적 사건을 차용한 셈입니다. 재판부 입장에서는 피고인 측이 방어 논리로 내세운 비상계엄 선포의 고도의 정치적 통치행위 성격이나 위법성 조각 사유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법의 지배를 수호해야 한다는 사법부의 단호한 헌법 수호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사례를 인용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처형당한 영국 국왕 찰스1세
찰스1세
올리버 크롬웰
왕을 처형시킨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

17세기 절대왕정과 21세기 민주공화국의 괴리와 오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스 1세의 재판과 처형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현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와는 전혀 맞지 않는 옷이라는 근본적인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찰스 1세 시대의 영국은 근대적 의미의 성문 헌법이나 삼권분립의 원칙이 확립되기 훨씬 이전의 불완전한 근대 이행기 사회였습니다. 왕이 신으로부터 직접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믿으며 의회의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하던 전근대적인 군주와, 이에 맞서 시민의 기본적 권리를 확보하려던 신흥 세력 간의 권력 투쟁이자 내전의 극단적 결과물이 바로 찰스 1세의 단두대 사형이었습니다. 반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철저하게 국민적 합의에 의한 성문 헌법에 기반하고 있으며, 입법, 행정, 사법의 권력이 명확히 분립되고 상호 견제되는 매우 고도화된 민주공화국입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왕이 아니라 국민의 직접 선거를 통해 한시적으로 행정부의 권력을 위임받은 최고위 선출직 공무원입니다. 설령 대통령이 헌법적 절차와 요건을 위반하고 무리하고 위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국회의 기능을 침해하는 중대한 헌정 파괴 행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이를 17세기 전제 군주의 폭정에 직접적으로 빗대는 것은 지나친 시대착오적 비약이라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현대 헌법 체계 안에서는 이러한 국가 원수의 심각한 일탈을 통제하고 제재하기 위해 국회의 탄핵 소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그리고 이어지는 일반 형사 사법부의 엄격한 재판이라는 매우 정교하고 문명적인 민주적 통제 절차가 이미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작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법부가 실정법과 헌법 규정에 따른 엄밀하고 건조한 법리 해석에 집중하기보다는, 377년 전의 참혹한 내전 상황과 단두대 처형이라는 원시적이고 폭력적인 혁명의 역사를 판결문에 끌어온 것은 도리어 사안의 법적 본질을 호도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의 전대미문 위기를 문명적이고 사법적인 제도로 침착하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역량을 중세 시대 수준의 보복 논리로 격하시키는 논리적 모순을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감정적 수사인가 법리적 판단인가, 정치적 파장과 한계

재판부의 찰스 1세 언급은 결국 사법부 특유의 엄정한 법리 전개라기보다는 다분히 감정적이고 수사적인 표현으로 비칠 소지가 다분합니다. 재판관은 오로지 객관적인 증거와 실체적 진실, 그리고 법률에 의해서만 심판해야 하며, 그 결론을 담은 판결문은 건조하리만치 이성적이고 치밀해야 합니다. 특히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있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무기징역 선고라는 극도의 정치적, 사회적 파장을 낳을 수밖에 없는 메가톤급 형사 재판에서는 판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철저히 법리적 정당성과 객관성으로만 무장되어야 논란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린 국왕의 비극적 선례를 재판장이 직접 낭독하고, 나아가 성경을 읽는다는 명분으로 촛불을 훔칠 수는 없다는 식의 문학적 비유까지 덧붙인 것은 설득력이 매우 떨어집니다. 

상당수의 법조계 전문가들과 정치 평론가들은 이러한 재판부의 서술 방식이 오히려 사법 판결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사회 내 불필요한 이념적 갈등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고 깊이 우려하고 있습니다. 재판의 대상은 피고인의 구체적인 행위가 형법 제91조에 명시된 내란죄의 엄격한 구성 요건에 정확히 부합하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지, 피고인을 역사 속 폭군과 동일시하여 심리적, 정치적 단죄를 내리는 공간이 아닙니다. 비유적 선고문은 일시적인 여론의 통쾌함을 자아낼 수는 있으나, 역사에 길이 남을 판결문으로서의 품격과 엄밀성을 떨어뜨렸다는 짙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고도로 양극화된 현실 정치 세력들은 이 화려한 판결문을 각자의 진영 논리에 맞춰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정쟁의 도구로 삼을 것이 자명합니다. 사법부는 역사를 심판하는 기관이 아니며 재판정은 역사 법정이 아닙니다. 차가운 이성과 치밀한 법리로 국가 권력의 일탈을 통제하고 인권을 수호하는 것이 사법부 본연의 역할임을 감안할 때, 찰스 1세의 소환은 사법 자제의 원칙을 훌쩍 넘어선 과잉된 역사적 비유이자, 현재 대한민국의 복잡다단한 정치적 역동성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논리적 틀이었습니다.

지귀연 재판부가 내린 이번 내란죄 무기징역 선고는 우리 헌정사에 결코 지울 수 없는 육중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아무리 최고의 통치 권력자라 할지라도 헌정 질서를 물리력으로 유린하는 행위는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명확한 경고 메시지를 역사에 남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판결의 명분을 세우고 범죄의 중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원된 영국 찰스 1세 반역죄 사형이라는 역사적 은유는, 정교한 헌법 체계와 고도로 성숙한 시민 의식을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와는 그 궤를 전혀 달리하는 무리한 차용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는 수백 년 전 과거의 극단적이고 원시적인 처벌 방식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전례 없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던 헌법과 법률의 시스템 그 자체의 위대함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 판결을 거울삼아 과거의 역사에 기대어 누군가를 극적으로 비판하는 수사학에 머물지 않고, 다시는 어떠한 국가 권력도 국민의 주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빈틈을 완벽히 보완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냉철한 이성적 성찰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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