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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 위치, 역사, 덴마크 지배 자치령 이유

by Equinoxe 2026.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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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란드는 왜 덴마크의 자치령이 되었을까요? 세계 최대 섬 그린란드의 지리적 한계, 바이킹 정착과 소멸, 덴마크의 지배 확립 과정과 현대 자치 구조까지 역사와 정치적 배경을 알아봅니다.

그린란드는 세계 최대의 섬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정착하기에는 가장 가혹한 환경을 지닌 지역 중 하나입니다. 이 거대한 섬이 오늘날까지 독립 국가가 아닌 덴마크의 자치령으로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그린란드의 정치적 지위는 단순한 외교 관계의 산물이 아니라, 혹독한 자연환경과 반복된 정착 실패, 그리고 국제 질서 속에서의 현실적인 선택이 누적되어 형성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린란드의 지리적 특성에서 출발해 바이킹 정착의 역사, 덴마크의 지배 확립 과정과 현대 자치 체제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린란드

덴마크와 그린란드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

그린란드는 북극권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섬으로, 지리적으로는 북아메리카 대륙판에 속해 있습니다. 동쪽에는 아이슬란드, 서쪽에는 캐나다 북동부가 위치하며 북쪽은 북극해와 맞닿아 있습니다. 국토의 약 80%가 빙하로 덮여 있어 거주지는 남서부 해안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덴마크의 자치령으로, 북극과 대서양을 잇는 지정학적 요충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린란드는 약 216만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진 세계 최대의 섬입니다. 남한과 북한을 합친 한반도 전체 면적 약 22만 제곱킬로미터와 비교하면, 그린란드는 약 9.8배에서 10배에 달하는 크기입니다.

그린란드는 전체 면적의 약 80%가 빙하로 덮여 있어 사람이 실제로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은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로 인해 전체 면적에 비해 인구는 매우 적어 현재 약 5만 6천 명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주민 대부분은 남서부 해안의 도시 특히 누크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그린란드가 독립 국가로 성장하기 어려웠던 근본적인 배경이 되었습니다. 농업 기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고, 교통과 물류 역시 자연환경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린란드는 자체적인 국가 체계보다는 외부 국가와의 관계 속에서 유지되는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덴마크와의 결속이 강화되었습니다.

바이킹의 정착과 소멸이 남긴 역사적 의미

유럽인이 그린란드에 본격적으로 정착한 것은 10세기 말의 일입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된 바이킹 지도자였던 에릭 더 레드는 서쪽으로 항해하여 그린란드 남부 해안에 도달하였고 이 땅을 ‘그린란드’라 명명했습니다. 그는 이 지역을 초목이 풍부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소개하며 이주민을 끌어들였습니다.

당시에는 중세 온난기의 영향으로 지금보다 기후가 비교적 온화해 소규모 농경과 목축이 가능했습니다. 그 결과 북유럽인들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수백 년간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착은 자연환경 변화에 극도로 취약한 구조였습니다. 14세기 이후 소빙기가 시작되면서 기온이 급격히 낮아졌고 농업 생산은 급속히 악화되었습니다. 항로가 얼어붙어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되었으며 수렵과 해양 활동에 특화된 이누이트에 비해 생존 경쟁에서도 점차 밀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15세기 중반을 전후로 북유럽 정착민들은 그린란드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으며이는 그린란드가 대규모 유럽 정착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린란드 수도 누크

덴마크의 지배 확립과 자치로의 전환

북유럽 정착민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린란드는 유럽 열강의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17세기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는 고래잡이를 목적으로 그린란드 인근 해역에 진출했고 이에 대응해 덴마크-노르웨이 왕국은 지배권 회복을 시도하게 됩니다.

18세기 초, 루터교 선교사 한스 에게데의 원정을 계기로 덴마크는 다시 그린란드에 정착 거점을 마련하였습니다. 이후 선교와 무역을 결합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고 1933년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그린란드 전역에 대한 덴마크의 영유권은 국제적으로 확정되었습니다. 1953년 덴마크 헌법 개정으로 그린란드는 공식적으로 덴마크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후 덴마크의 현대화 정책은 이누이트 전통문화와 생활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이에 대한 반발은 점차 정치적 요구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1979년 홈룰 제도가 도입되었고 2009년 자치법 시행을 통해 자원 개발과 사법권 등 광범위한 권한이 그린란드로 이양되었습니다. 현재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정은 그린란드 정부가 직접 관할하고 있습니다.

덴마크령 그린란드

그린란드가 덴마크의 자치령으로 남게 된 과정은 단순한 식민 지배의 결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혹독한 자연환경, 반복된 정착 실패, 그리고 국제 질서 속에서의 현실적인 선택이 축적된 결과라고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오늘날 그린란드는 자치와 독립 사이에서 신중한 균형을 모색하고 있으며 그 선택은 북극을 둘러싼 국제 정세와 함께 앞으로도 계속 주목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미국의 압박 또한 큰 변수가 될 것입니다. 아마도 2026년이 그린란드로서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한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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