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릴 열도 영토 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째 이어지는 러시아와 일본의 미해결 국제 분쟁입니다. 쿠릴 열도의 역사적 배경, 시모다 조약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쟁점, 지정학적 중요성과 향후 전망을 정리합니다.
러시아와 일본은 아직까지도 공식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례적인 이 외교적 공백의 중심에는 쿠릴 열도 영토 분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쿠릴 열도는 단순히 몇 개의 섬을 둘러싼 다툼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와 냉전 질서,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강대국 전략이 중첩된 문제입니다. 특히 동북아 안보 지형과도 맞닿아 있어 한반도를 포함한 주변국들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습니다. 쿠릴 열도 분쟁의 역사적 흐름과 현재의 쟁점, 그리고 현실적인 향후 전망을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쿠릴 열도의 지리적 가치와 지정학적 중요성
쿠릴 열도는 러시아 캄차카반도 남단에서 일본 홋카이도 북동쪽까지 약 1,200km에 걸쳐 이어진 도서 군락입니다. 크고 작은 섬을 합치면 총 56개에 이르며, 현재는 러시아가 전면적으로 실효 지배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 가운데 남부 4개 섬을 북방영토로 규정하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지리적 위치입니다. 쿠릴 열도는 동해와 오호츠크해를 연결하는 해상 관문에 해당합니다. 러시아 입장에서 오호츠크해는 전략 핵잠수함이 은밀하게 활동하는 핵심 해역으로, 쿠릴 열도는 이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방어선 역할을 합니다. 만약 이 섬들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과 해군 전략은 심각한 제약을 받게 됩니다. 일본 역시 쿠릴 열도를 단순한 영토 이상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홋카이도 북방 방어선의 안정성, 해양 주권 확보, 풍부한 수산 자원 보호라는 실질적 이유가 존재합니다. 실제로 쿠릴 열도 인근 해역은 어족 자원이 풍부하며, 해저 자원까지 포함한 잠재 가치는 약 64조 원 규모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제적·군사적 가치가 결합되면서 쿠릴 열도는 동북아 지정학의 핵심 요충지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조약과 전쟁으로 뒤바뀐 쿠릴 열도의 역사
쿠릴 열도는 본래 아이누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이 고기잡이를 하며 살아가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초부터 러시아 제국의 동진 정책과 일본 에도막부의 홋카이도 개척이 맞물리면서 상황이 급변합니다. 양국은 쿠릴 열도에 기지를 세우며 세력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고, 명확한 국경선이 없는 상태에서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이 갈등을 제도적으로 정리한 것이 1855년 체결된 시모다 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일본과 러시아가 맺은 최초의 공식 조약으로, 이투루프섬 이남은 일본, 우루프섬 이북은 러시아로 국경을 임시 설정했습니다. 일본은 오늘날까지도 이 조약을 근거로 남부 4개 섬은 원래부터 일본 영토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후 1875년 쌍트 페테르부르크 조약이 체결되면서 양국은 보다 명확한 영토 교환에 합의합니다. 일본은 사할린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쿠릴 열도 전체를 확보했고, 러시아는 사할린 전역을 차지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쿠릴 열도는 국제적으로 일본 영토로 명확히 정리되었으며, 일본은 이 지역을 해군 기지로 활용하며 태평양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1904년부터 1905년까지 벌어진 러일전쟁은 쿠릴 열도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부각시킨 계기였습니다. 일본은 열강의 예상을 깨고 승리했고, 그 결과 러시아는 사할린 남부를 일본에 양도하게 됩니다. 일본은 오호츠크해 절반을 영향권에 두게 되었고, 쿠릴 열도 전역을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급격히 뒤집히게 됩니다. 1945년 일본 본토는 미군에 의해 사실상 봉쇄되었지만 일본 정부는 항복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얄타 회담에서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요청했고, 그 대가로 쿠릴 열도와 사할린 남부를 소련이 차지하는 데 동의합니다. 전쟁 막바지에 소련군은 쿠릴 열도를 점령했고, 이 점령 상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의 분쟁과 향후 전망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은 쿠릴 열도와 사할린 남부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했습니다. 문제는 이 조약에 쿠릴 열도가 어느 국가에 귀속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남부 4개 섬은 쿠릴 열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반면, 러시아는 쿠릴 열도 전체가 전쟁의 결과로 합법적으로 편입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 조약의 구조적 공백은 미국의 전략적 계산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냉전 초기, 일본과 소련 간의 영토 분쟁을 고착화함으로써 동북아에서 소련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반영되었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소련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서명하지 않았고, 이후 쿠릴 열도 문제는 더욱 복잡한 국제 분쟁으로 남게 됩니다. 현재 러시아는 쿠릴 열도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며 군사 시설과 민간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이 문제가 이미 종결된 전쟁의 결과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 역시 일본이 러시아의 주권을 인정해야만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습니다. 반면 일본은 남부 4개 섬 반환을 포기하지 않고 있으나, 현실적인 돌파구는 마련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북방영토 프로젝트 역시 상징적 의미에 머물러 있으며, 국제 정세 속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쿠릴 열도 분쟁은 단순한 영토 갈등이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유산, 냉전 질서의 불완전성, 그리고 오늘날 미·러 전략 경쟁이 중첩된 구조적 문제입니다. 단기간 내 해결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현실적으로는 분쟁 관리와 긴장 완화가 우선되는 사안으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쿠릴 열도는 앞으로도 동북아 안보와 국제 정치에서 조용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